최근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 학교 전자 도서관을 이용하여 눈에 끌리는 소설책 한 권을 빌려 읽었다.
2023 첫 도서 제목은 <한 스푼의 시간>.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명정'과
사고를 당한 이후 행방불명 된 아들로부터 배송된
휴머노이드 로봇 '은결'의 이야기다.
'은결'이 인간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인간의 삶을 학습하는 과정들이 드러난 문장들이 굉장히 섬세하다.
이과와 문과의 감성들이 모두 섞여 있어 읽으면서 문장을 스크랩하면서 읽을 정도로 마음에 드는 문장들이 많았다.
"그렇게 부서지기 쉬운 거라면 사람들은 어째서 가족을 이룹니까."
'명정'이 자신의 아들을 이국에 있는 육촌동생 내외에 부탁했지만 결국 '남겨먹기'를 시전해 갈등이 있었던 이야기들을 '은결'에게 하자 위와 같이 이야기한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가족'이라는 단어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들었던 것 같다.
남보다는 가족이 낫다고들 이야기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부서지지 않을 단단함으로 똘똘뭉친 가족이 있는 반면, '가족'이라는 명목 하에 관계가 유지되고 있어 조금이라도 더 가다가는 깨져버릴 듯한 가족도 있기에.
인간관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문장이었다.
사지 멀쩡하여 일할 수 있는 누구나 마음이 조금만 기울어져도 그대로 넘어져 부서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그저 의지박약의 일종으로 치부했으며, 자신이 홀몸으로 딸을 억척같이 키워낸 과업을 수시로 내세우는 한편, 과거의 자신과 달리 지금의 딸은 직무태만에 모성 부족이며 등 따시고 배가 불러서 우울증 따위가 드나드는 것이니, 우울증이란 그저 병원과 의사가 돈벌이를 위해 만들어낸 허상의 질병 이름으로서 거기 놀아나는 딸이 한심하다는 말로 더 큰 갈등의 요인을 만들곤 했다.
사람이 당황하거나 분노하거나 흥분했을 때 화자의 말은 평소보다 빨라지면서 문법 구조가 흔들리거나 파괴되고, 청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는 인간 고유의 능력을, 은결은 알게 된다.
느낌은 역시 느낄 수 있는 존재에게 들려주었을 때 성립되는 추상적인 개념이며, 은결에게 있어서는 감각기관을 통한 외부 정보의 입수까지가 한계일 거라고 했다. 습득한 정보를 마음속에서 어떻게 굴리는지가 사람이 말하는 느낌의 시작이라고.
사람에게는 너무나 단순한 인과관계-규정된 자리를 정도 이상으로 비울 때는 식구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연락을 드리는 게 좋겠다는, 굳이 언어로 표시할 필요도 없이 몸에 밴 체계-가 실은 고도의 복합 지능과 사고 단계를 세분화를 필요로 하는 추리 과정의 일부라는 사실을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포옹은 인간에게 호의를 표하고 위로를 주는 가장 효과적인 동작의 하나이므로 은결은 비로소 행위 반응의 적절한 활용으로 자신의 임무를 다했다는 결론을 내린다.
수많은 유추 행위를 통해, 주인이 직접 말하지 않은 것이라도 상황을 통한 짐작으로 종합하는 경지에 이른다. 그에 따라 늘어나는 경험과 지식의 질량은 그에게 필요치 않은 무거운 털외투처럼 나날이 몸을 감싼다. 그러나 그 외투를 벗고 가벼워져야 한다는 판단만은 들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은결이 인간 세상사를 살며 조금씩 달라지는 부분들의 묘사를 읽어나가는 것이 가장 흥미로웠다.
그럼에도 스스로의 가능성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맑고 치열한 눈매와, 이 세상에 잠복한 모순의 전염성과 지뢰처럼 매설된 불의의 무늬를 인식하면서도 거기에 도무지 질 것 같지 않은 미소를, 고단한 시기에 예민한 나이까지 잃지 않고 지켜왔다는 점을 명정은 높이 산다.
'시호'라는 인물을 설명하는 비유가 인상적이었던 문장이다.
인간의 행동과 관습은 최초의 인간이 있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누적 패턴화되어 일상생활에서 반응 출력이 쉽게 예상되는 만큼이나 그 반대의 경우도 많은데, 그것은 로봇에게 존재하지 않는 충동과 싫증이라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꺽이고 부서진다는 점에서 외관상 같다고 볼 수 있으나 그 무너짐은 정말 저 무너짐과 같은가. 무너진다는 건 결국 그 현상을 대하는 사람의 슬픔이나 분노에 좌우되는 게 아닌가. 명정은 앞으로 은결에게는 되도록 비유를 배제하고 객관적인 수치나 물성으로 표현 가능한 언급만 하는 게 좋을까 싶다가도, 실제로 그런 말만 골라 하는 게 더 어려운 일임을 곧바로 깨닫는다. 인간이 수천 년에 걸쳐 누적해온 발화의 양식이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져 내려온 이상은.
사람이 느끼는 무너져 내린다와 건물을 철거할 때 무너진다는 표현의 차이를 묻는 '은결'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에 대한 '명정'의 고민이 담긴 문장이다.
그토록 사소한 일상을 통해 익히 경험해왔으면서, 고성능 컴퓨터가 탑재된 로봇이 언제까지나 곁에서 삶을 지탱해주리라는 착각을 한때나마 하다니. 시간의 칼날이 평등하게 그 목덜미를 향한다는 생각을 어째서 한 번도 해보지 않았을까.
숫자의 추상성은 구체적인 현실을 압도한다.
기회 비용을 떠올린다면 이 문장이 무슨 뜻인지 조금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사람은 인과관계를 항상 염두에 두는 생물이며, 무엇보다 분위기를 파악하고 그에 따른 추임새를 넣으려 애쓰는 존재다. 상대를 딱히 싫어하지만 않는다면. 인사란 그런 것이다. 잘 잤어요, 오랜만, 같은 습관과는 또 다른 작용을 주고받기. 사고와 관계의 지층을 쌓아오는 동안 표면을 어루만짐으로써 이면을 촉각하게 된 존재가 사람인 것이다.
아무리 악품을 집중 분사해도 직물과 분리되지 않는 오염이 생기게 마련이듯이, 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어느 순간에 이르면 제거도 수정도 불가능한 한 점의 얼룩을 살아내야만 한다. 부주의하게 놓아둔 바람에 팽창과 수축을 거쳐 변형된 가죽처럼, 복원 불가능한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해 불가능한 방식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구전을 통해 허황되게 부풀려지는 것들. 존재의 진실성 여부가 그것을 상상하는 사람들의 수긍과 인정에 달려 있는 것들. 잊어버린 채 방기하고 있으면 어느 순간 등 뒤에서 노크해 오거나 부지불식간에 덜미를 잡아채는 것들. 실체를 확인하고 분석하기 위해 과감히 렌즈를 들이대면 사라지는 것들. 그래서 때로 지나치게 의미가 부여되곤 하는 것들. 그러므로 존재하기를 그만둘 게 아니라면, 차라리 이해하기를 멈춰야 옳은 것들. 은결은 그 가운데 하나의 모습으로 그의 곁에 머물러 왔다.
평소 내 성격대로라면 그 자리에서 타블리에를 벗어다가 그 자식 상판대기를 갈기고 나와버려도 모자라겠지. 하지마 이미 숱한 알바로 사회 물을 먹어본 사람이 암만 고까워도 그렇게 못하지. 포인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굴하지 않게 말하기야.
선의가 항상 보답으로 돌아오는 건 아니기에 당신은 부당한 곤경에 처했고 이제 비로소 빠져나왔습니다.
우리가 감정이라고 믿는 건 실은 지식의 일부가 아닐까요.
그를 온몸으로 책임질 수 없다면, 그의 짐을 나눠 지지 못할 것 같으면 그에 대해 궁금해해서는 안된다. 그건 어림 반 푼어치 얄팍한 호기심에 지나지 않는다. 한 존재 한 생명을 전적으로 책임지면서 그녀가 가장 먼저 알게 된 삶의 자세가 그것이다.
이야기가 급전개된다거나 갈등이 고조되는 양상이 잘 보이는 책이라기 보다는 긴 시간을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로봇이 어떤 부분을 학습해서 변화해나가는지를 지켜볼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인 책이다.
긴 시간을 압축해 담아냈지만 '은결'과 '명정' 이외에도 나오는 인물들 또한 그들의 삶이 잘 묘사되어있기에 독자는 제 3자의 입장에서 여러 인물들이 살아가는 긴 시간의 순간들을 함께 보낸다고 생각하고 읽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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